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4F 와일드캣 (문단 편집) == 활약상 == > 나는 지금도 분명히 와일드캣이 2차 세계대전 초반의 해군 전투기 중 매우 걸출했다고 평가한다... 내 자신이 직접 경험한 바를 통해 보증하건대, 이 그루먼제 전투기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함상기 중의 하나였다. - [[에릭 브라운]] (Eric M. "Winkle" Brown - 영국의 테스트 파일럿) 와일드캣이 미국에서 정식 발주를 받을 무렵 영국도 씨 글라디에이터를 대체할 함재기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자국 항공사들이 제출한 후보기체들의 성능이 딸리자 그냥 미국에서 개발된 와일드캣 600기를 질러서 '마틀렛'이란 이름으로 운용하였다. 이 영향으로 와일드캣 역시 영국에서 먼저 실전데뷔를 하였으며, 항공모함 작전이 주로 이루어진 북아프리카와 발칸반도 쪽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니까 태평양 전쟁 당시 미 기동부대의 전투기를 대표하는 기체가 와일드캣인데 그 와일드캣의 데뷔가 대서양이었다는 아이러니. 의외로 미 해군은 태평양이 메인 무대였지만 여러 병기들의 데뷔전은 대서양에서 치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편 미 해군은 버팔로가 와일드캣에 비해 성능은 떨어지지만 그리 다급하게 교체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그 영향으로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고작 항공모함 [[호넷(항공모함)|USS 호넷]]과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USS 엔터프라이즈]]의 전투비행단에만 와일드캣을 보급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버팔로가 [[A6M|A6M 제로]]에게 순삭나버리자 그제서야 모든 항공모함 전투비행단에 와일드캣을 보급하였다. 초기에는 제로 전투기의 우수한 파일럿들, 그리고 미숙한 와일드캣의 파일럿들과 낮은 사기로 열세를 보였지만 점차 베테랑 파일럿들과 전략이 쌓이고 사기가 올라가면서 제로센에 대등히 맞서게 되며 자신의 장점들을 활용해 다른 일본 전투기들을 막는데도 큰 공을 세운다. 그리고 와일드캣은 미국이 가장 위험했던 1년간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 등에서 활약하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와일드캣이 버티는 동안 양산된 [[F6F 헬캣]]과 같은 후계기들이 항공모함에 배치되면서 사실상 일선기에서는 물러났지만, F6F나 F4U 등의 후속 기체들보다 소형이며 저속에서 착함이 가능하고 이륙거리가 짧다는 점을 활용해 [[호위항공모함]] 등에서 함대방공기로 계속 사용되었다. F4F 생산량 중 호위항모에서의 이용을 전제로 하고 만든 파생형인 FM-2가 5,280기로 최다를 차지할 정도. 선입견과는 다르게 의외로 전쟁 말기까지 꾸준히 사용된 기종. 요 FM-2의 경우 더 와일드한 와일드캣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일단 엔진 출력이 1350마력으로 늘어났으며[* 재미있는게, 엔진도 기존 엔진은 14기통 2열짜리였지만 더 간단한 1열짜리 9기통으로 바뀐다.], 과급기가 의외로 1개로 줄어버렸으나(그래도 2단계 속도 조절 가능) 일본기들이 사실상 전략폭격기들이 다니는 고도까지 올라가지도 못 하므로 그 이하 고도에서 더 성능이 좋도록 고친 것이다. 거기다 WEP도 추가. 덕분에 폭장은 대폭 늘어나서 로켓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후계기들에게는 밀리는 것은 사실이라 종전과 함께 완전히 퇴역하였다. 사실상 대전이 끝났으므로 호위항공모함이라는 함종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으며 이미 제트엔진의 등장으로 프롭기를 더 이상 운용할 이유가 없어진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전시에 생산된 병기답게 그루먼사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기체이지만, TBF 어벤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전시공업체계에 따라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제너럴 모터스]]에서도 자동차 생산을 잠시 접고 와일드캣을 생산하였다. 특히 그루먼사가 헬캣 양산으로 전환한 후에도 생산라인이 유지됐는데 그 덕분에 와일드캣 생산량 가운데 66%는 GM 제품이다.[* 상기 주석의 FM-2도 GM사가 생산한 기종이다.] 태평양 전쟁 전 기간에 걸쳐 미 해군과 해병대의 와일드캣은 15,553회 출격했고 (그 중 14,027회는 항모에서 출격), 1,327기의 적기를 격추했으며, 178기를 공중전에서 잃었다. 전쟁 전기간의 손실-격추 교환비는 1:6.9. 기타 지상/함상의 대공포화로 24기, 기타 운용상 비전투손실 49기를 잃었다. 그러나 폭장탑재량은 빈약했기 때문에, 방공/호위 전투기로서의 역할에 집중되어 전쟁 기간 내내 폭탄 투하량은 154톤에 그쳤다.[* 특히 전쟁 후반기의 FM-2 모델 이전의 버전은 100lb(45Kg) 폭탄 두 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웨이크 섬 전투]]에서는 이 소박한 폭장량으로 일본군 구축함을 격침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와일드캣은 수치상 스펙으로는 그리 뛰어나게 보이지 못하게 전투기였지만 실전에선 튼튼하고 신뢰성 있는 기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전술운용을 통해 제로센 등을 상대로 대등이상의 전투를 벌이며 선전, 일본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시작한 태평양 전쟁 초반의 열세를 버텨내며 일본군의 해상 제공권 장악을 저지하여 역전의 발판을 쌓는데 큰 기여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